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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Gom bros.

곰식 이야기

2019년 6월 23일 오전 5시 40분 우리 집 첫째 고양이 곰식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고양이 별로 떠났다. 

 

막 12살이 되던 2017년 초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곰식이는 신부전 2기 진단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바뀌게 될 병명 뒤의 숫자가 주는 중압감과 두려움에 무서웠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한참을 멍해 있었다. 나이 든 고양이에게 찾아오는 이 신부전증이란 질환에 대해 공부하고 계속 배웠다. 나이 든 곰식이에게 자연스럽게 당면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건강검진을 통해 초기 단계에서 발견하게 된 점, 곰식이가 원체 먹성도 좋고 기본 체격도 좋은 점, 곰식이의 성격이 무던하고 점잖으며 의연한 점 등은 오히려 고맙고 다행인 상황이었다. 예상대로 곰식이의 신장 수치는 잘 유지되고 있었다. 잘 유지되고 있었다, 라는 이 한 문장에는 곰식이와 나의  지난 3년 간의 시간이 담겨 있다.

 

시간 계산해가며 하루 5-6 종류의 약을 먹이고, 매일 매일 일정 양의 수액 맞혔다. 병원에서 배운 대로 피하수액을 집에서 맞히던 첫날에는 온몸을 땀으로 적셔가며 작은 방에서 1시간 30분가량 곰식이와 합의점을 찾으려 고군분투했었다. 첫날의 결과는 겨우 50ml였지만, 천천히 시간을 두고 나와 곰식이는 방법을 찾아갔다. 나중에는 한 번에 필요한 양만큼 피하수액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큰 거부감 없이 피하수액을 받아준 곰식이가 항상 대견하고 고마웠다. 신장 수치를 체크하면서 먹이는 약이나 수액 양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병원을 갔다. 검사 가는 날은 전날부터 마음을 졸여야 했다. 검사 결과 수치를 확인할 때는 마치 내가 곰식이를 얼마나 잘 도와줬는지에 대한 성적표를 받아보는 것 같았다. 수치는 갑자기 오르기도 하고 오른 만큼은 아니지만 내리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가던 정기검사를 이주일에 한 번씩 해도 된다고 했고, 나중에는 한 달에 한 번씩만 해도 되었다. 그리고 최근 1년은 세 달에 한번씩  정기검사를 갔다. 크레아틴 기준 수치 2.4에서 신부전 진단을 처음 받고 최고 3.3까지 올랐다가 2점대 후반과 3점대 초반 사이를 꾸준히 유지했다. 수치가 더 이상 오르지 않고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다. 마지막 정기검사였던 지난 5월 1일 기준으로 크레아틴 수치는 3.1, BUN 수치는 43이었다. 

 

6월 들어 곰식이가 피하수액을 불편해하는 눈치였고, 먹성도 예전 같지 않아 보였다.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셔 감자 수는 비슷했지만, 모래 속 맛동산 수가 적어져 변비인가 싶어 유산균 먹이는데만 좀 더 신경을 썼다. 아침마다 밥 달라고 꾹꾹이 하던 곰식이가 침대에 올라오지 않고, 라탄 하우스 안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더워진 날씨 탓에 기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 검사를 한지가 한 달 조금 지난 상황이었고, 수치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이 상황에서 곰식이가 평소와 달리 아프면 가야 하는 곳이 이차진료병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병원 가는 것 자체에 곰식이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고 싶지 않아서 더위를 일찍 탄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며칠 전, 퇴근 후 저녁을 챙겨 라탄 하우스 안에 있는 곰식이 앞에 뒀는데 먹으려고 얼굴도 내밀고 앞발까지는 움직여 보지만 몸 전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됐다. 분명 아침까지 현관 앞에 있던 곰식이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급하게 집 근처 10분 거리의 이차진료병원 응급실로 갔다. 6월 19일 수요일의 밤의 일이다. 

 

6월 20일 목요일 

새벽 2시 경, 곰식이의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의심했던 심장 쪽 이상이나 혈전은 아니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이 이어졌다. 곰식이가 만성 신부전에서 급성으로 위험한 상태라고 했다. 크레아틴 24.5, BUN 227이 나왔다. 공격적으로 정맥수액 처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저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떨어뜨리는 게 급선무였다. 아니 이렇게 말도 안 되게 갑자기? 믿을 수가 없었다. 카페에서 글로만 보던 상황이 나와 곰식이의 현실이 됐다. 너무 무서웠다. 최소 5일 정도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곰식이를 중환자실에 입원시켜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울었다. 곰식이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무섭고 외롭지는 않을지 너무 아픈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곰식이가 버텨주길 마음으로 계속 말하고 또 말했다. 

날이 밝았고 오전 11시 경 배정된 주치의 선생님과 전화 면담을 했다. 곰식이가 소변도 2번이나 봤고, 식사도 주는 대로 거부 없이 잘 받아서 먹는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곰식이다 라고 생각했다.  빨리 퇴근 시간이 와서 면회를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오후 6시 30분 곰식이를 면회했다. 곰식이 성격에 병원에 혼자 둔 것에 대해 분명 한 소리 할 것이라고 각오는 했다. 아니나 다를까 1번의 하악질과 여러 번의 으르릉을 했다. 이해해줘 곰식아, 지금 조금 아픈 거 빨리 낫게 해서 집으로 같이 가려고 하는 거야 라고 말해줬다. 평소처럼 더 호되게 하악 질 하고 으르렁거리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력은 평소 답지 않았다. 호흡도 가빠보였다. 그래도 눈을 깜빡여주면 눈을 맞춰 눈키스를 해주었고, 곰식아 식아,라고 이름을 불러주면 꼬리를 움직여줬다. 

 

6월 21일 금요일 

오전 11시경 주치의 선생님 전화 면담을 했다. 크레아틴 19.6, BUN 199로 떨어지긴 했지만 몸에서 수액 흡수가 느리고 심장 쪽도 신경을 쓰면서 처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병원에서도 마냥 공격적으로 처치할 수 없어서 수치 떨어지는 속도가 더딘 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배뇨를 하고, 식사 거부도 없고, 바이탈 사인이 정상 범위라고 하여 또 한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치의 선생님도 현재 같은 수치에서는 보기 드문 컨디션이라고 했다. 몸무게는 입원 당시 9.2에서 9.7kg로 올라 복수가 찬 게 아닐까 의심이 된다고 했고 수액 양을 줄인다고 했다. 오후 6시 30분 곰식이 면회를 했다. 눈키스는 안 해줬지만 전날보다 눈빛은 더 살아 있는 것 같았다. 한 번 정도 으르렁거렸고, 이름을 뿌르면 꼬리를 움직였다. 호흡 상태는 어제보다 더  가빠 보였고, 일정하게 앓는 소리를 냈다.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곰식이가 많이 힘들어 보였다. 면회 후, 주치의 선생님과 면담에서 곰식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으니 병원 처치에도 큰 차도가 없는 게 맞다면 말을 해달라고 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절대적 수치로는 좋지 않은 게 맞고 떨어지는 속도도 느리지만 그에 비해 곰식이의 나머지 컨디션이나 바이탈 상태가 정상이라 의사로서는 포기라는 결정을 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태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주치의 선생님도 우리도 서로의 상황을 존중하고 이해했지만 선택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곰식이가 더 버텨주길 바랬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힘이 들면 그렇게 까지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쓰고 있는 상황이 아니길 바랬다.  

 

6월 22일 토요일 

오전 10시경 주치의 선생님 전화가 왔다. 몸에서 수액을 흡수하지를 못해 새벽에 방사선을 찍었고, 흉수가 찬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수액 처치를 중단하고 흉수 제거를 위해 이뇨제 투여를 한다고 했다. 오후 12시 곰식이를 면회 했다. 수치는 전날보다 조금 떨어졌지만 눈에 띄게 기력이 없고 호흡은 여전히 힘들어 보였다. 앓는 소리도 여전히 내고 있었고, 눈에 초점이 없어 보였다. 같이 입원해있던 다른 고양이가 퇴원을 해서 이 날부터는 중환자실 전체를 곰식이가 사용했다. 입원 케이지 대신 중환자실 바닥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곰식이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중환자실 문 앞으로 가서 있는 힘껏 앞발로 발길질을 두어 번 하더니 이내 또 기운이 없는지 쓰러졌다. 누워서도 앞발만은 문을 향해 움직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모습은 집에서 목욕할 때 화장실 안에서 나가려고 문 앞에서 발버둥 치는 평소 곰식이의 모습이었다. 누나들이 왔으니 발버둥 치고 싫어하면 문 열어주는 거 아니까 중환자실 문 열어달라고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던 것이었구나,라고 나중에 생각했다. 

점심 면회 후에 곰식이 몸에 찬 흉수와 복수를 제거 했고 , 방사선 확인 결과 폐 이상은 없었다. 저녁 면회에서 본 곰식이는 몸에 차 있던 물이 빼냈지만 여전히 힘들어 보이고 호흡이 빠르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런 곰식이를 보고 있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면회 전까지 소변은 자발적으로 봤다고 했지만, 식사는 조금씩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고도 했다. 저녁 면담에서 주치의 선생님께 곰식이의 마지막 시간은 집에서 보내고 싶다고 그 시간이 온 거라면 말을 해달라고 울면서 말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아직은 아니라고 했다. 생사가 오가는 진짜 마지막 순간 말고, 집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정도의 상황이라면 데려가고 싶다고 마지막에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다고 울면서 말했다.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병원 처치가 없어 곰식이가 느끼는 고통이 곰식이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안다고 했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좀 더 생각할 수 있게 시간을 줬다. 40분가량 시간을 가졌다. 어떤 선택이 곰식이에게 좋은 것일지. 쉽지 않았다. 너무 어려웠다.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게 곰식이와의 이별 시간을 더 앞당기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병원에서 혼자 외롭게 있는 긴 시간보다는 우리와 집에서 얼마가 됐든 함께 하는 시간을 곰식이는 원하고 또 행복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힘겨워하는 곰식이를 보고 있는 게 우리에게도 힘들겠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선생님께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말을 했고, 우리의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병원에서 나와 케이지를 차 뒷 좌석에 올리는 순간 곰식이가 "야아옹"이라고 말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곰식이가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무 놀랐고 고마웠다. 집으로 데려가는 선택이 옳은 건지 반신반의하던 우리에게 곰식이가 대답을 준 것이다. 아니 그렇게 사인을 보냈는데 왜 이제야 가는 거냐고, 나 집으로 가고 싶었던 게 맞으니까 빨리 가자고 답을 준 것이다. 곰식이의 "야아옹"은 평소 병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현관 바닥에 케이지를 놓았을 때 내던 그 소리와 같았다. 

 

지금부터는 집으로 돌아온 6월22일 토요일 밤 10시 30분부터 다음날인 6월 23일 새벽 5시 40분까지의 이야기다. 

 

집에 와서 두 세번 정도 더 "야아옹"하고 소리를 냈다. 호흡은 분당 36회 정도로 가쁜 편이었고, 앓는 소리도 여전했다. 눈빛이 또렷했다가 흐렸다가를 반복했다. 침대에 누운 곰식이는 수시로 몸을 뒤척였다. 좀 더 편안한 자세를 찾는 것 같아 보였다. 모든 상황을 감내하기로 마음먹고 집으로 온 것이지만 실제로 곰식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힘이 들었다. 병원 면회 가서 10분 정도 힘든 모습을 보고 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곰식아 힘들면 버티지 않아도 된다고 곰식이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계속 말해주며 눈을 맞추려고 했다. 여전히 이름을 부르면 꼬리를 움직였다. 집에서 돌아온 지 두 시간 만에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진통제라도 맞히고 싶어서였다. 다시 병원으로 왔을 때 곰식이가 받을 스트레스, 강제로 약을 먹이려고 하는 게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옆에서 동생이 말했다. 우리가 힘든 곰식이 모습까지 다 감당하기로 하고 집으로 온 거잖아. 이제 집에 온 지 두 시간 됐어. 우리가 더 강해져야 된다고. 맞는 말이다. 

2시 40분 호흡소리 작아지고, 호습 속도도 느려졌다. 2시 55분 스스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소변을 본 것은 아니고 들어가자마자 모래에 누워 버렸다. 병원에서 말한 스스로 화장실에 간다는 말이 이 모습이었구나. 집으로 데려 오길 잘했다고 또 한 번 생각했다. 곰식이는 원래 얼굴을 어디 기대고 누워 있는 걸 좋아했다. 화장실 안에서 기대 있는 게 편한 것 같았다. 그대로 두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할 수 있게 화장실 안 모래 위로 수건을 깔아주고 겉도 수건으로 감쌌다. 곰식이에게도 수건을 덮어줬다. 3시 55분 입을 닫고 코로만 숨을 쉬었다. 4시 3분 호흡 속도가 느려져 체크를 해보니 분당 31회였다. 4시 10분 스스로 고개를 드는 횟수가 많아졌다. 화장실 안이지만 비교적 움직임이 잦아졌다. 4시 16분 몸이 많이 차갑고 입을 벌려 호흡했다. 저체온증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 있던 수액 중 2개 꺼내 중탕해서 곰식이 곁에 두었다. 바로 곁에 두는 건 싫어해서 화장실 곁에 닿을 수 있게 뒀다. 중탕하고 곁에 두고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따뜻해질 수 있도록. 4시 55분 숨소리가 안 나기 시작했다.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들리기를 반복했다. 집이 더 고요해졌다. 5시 23분 화장실 안 곰식이가 있는 힘껏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기대고만 있던 얼굴을 올곧게 들었다. 입원 이후 목을 제대로 가누며 이렇게 얼굴을 든 적은 처음이었다. 곰식이가 우리와 눈을 맞추었다. 눈빛은 선명했고 예뻤다. 아름답고 의젓하게 얼굴을 들고 눈을 맞추기 위해 곰식이는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곰식이다운 마지막 인사였다. 

 

5시 25분 곰식이가 화장실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쓰러졌다. 입과 엉덩이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야아아옹"하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곰식이가 아프다고 울고 있었다. 입에서는 흰 거품이 나왔다. 곰식이가 우는 소리가 더 커졌다. 그렇게 10분의 시간이 흘렀다. 5시 35분 소리를 내며 경련 증세를 보였다. 5시 37분 신경 발작이 시작됐다. 더 크게 우는 소리를 냈다. 양발과 몸을 쭉쭉 폈다. 기지개를 켜는 것 같이 보였다. 곰식이답게 크고 웅장한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3분간 곰식이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몸짓은 계속됐다. 그리고 5시 40분 곰식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고양이 별로 갔다. 

 

창 밖으로 동이 트고 있었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렸다.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이 순간을 함께 했고 기억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