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식아, 안녕

from Dear Gom bros. 2019.06.26 20:10

6월 23일 하루는 집에서 침대에 곰식이를 편히 눕혀 놓고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곰식이의 몸은 천천히 차갑고 딱딱해져 갔다. 몸이 커서 그런가 사후 강직도 천천히 온다라며 곰식이 답다고 말했다. 몸에 차 있는 복수 때문인지 옆으로 예쁘게 누워 있는 곰식이의 코에서는 맑은 물이 조금씩 계속 흘렀다. 그 물을 닦아주는 순간순간이 고맙고 소중했다. 밤에도 2시간에 한 번씩 여동생이 코를 닦아 주었다. 침대에 눕혀만 놓지 말고 끝까지 자기 봐달라고 곰식이가 그러는 것 같아서 좋았다. 

 

곰식이의 장례는 다음날인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 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경기도 광주 오포읍에서 진행됐다. 중환자실에 곰식이를 입원시키고 돌아온 날 새벽에 미리 알아봐 둔 업체였다. 8년 전에 곰동이를 갑작스럽게 마취사고로 보내고,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례를 치른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서 곰동이를 보내고 나서는 화도 많이 났고 감정을 추스르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마지막까지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마음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우리 곰식이에 어울리게 멋지고 우아하면서도 끝까지 위트가 있는 장례식이었다. 내가 선택한 장례 프로그램에 포함된 최고급 오동나무관은 곰식이가 편히 눕기에는 크기가 다소 작았다. 고급관 대 사이즈로 변경하시겠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고양이들은 사용하지 않는 강아지용 큰 사이즈라고 했다. 웃음이 났다. 역시 넘버원 뚠냥이 곰식이라고 생각했다. 추모공간이 준비되어 1시간 정도 추모 시간을 가졌다. 곰식이는 최고급 비단 수의를 입고 편안히 누워 있었다. 다행히 수의는 곰식이 몸에 맞았다. 옵션 변경 없이 예쁜 옷을 입혀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제 보내 놓은 사진으로 만든 추모실 내 슬라이드 속 곰식이와 나무관에 누워있는 곰식이의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다르지 않아 좋았다. 살이 빠지거나 아픈 모습이 아니라 기품 있고 뚠뚠했던 평소 곰식이의 모습이라서 좋았다. 곱게 수의를 입고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1시간 20분 정도 화장이 진행됐고, 이후에 유골 확인을 했다. 곰식이 유골은 귀여웠다. 작고 조그만 머리뼈를 보니 웃음이 났다. 이후 곰식이의 유골분으로 '루쎄떼'라는 보석을 만드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과정을 확인하며 3시간 정도 시간이 더 걸린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곰식이는 284개의 빛나는 루쎄떼가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곰식이 루쎄떼는 곰식이의 눈 색깔과 많이 닮은 애매한 그린색이었다. 애매하지만 아름다웠다. 마지막에도 곰식이는 또 한 번 우리를 웃겼다. 우리가 선택한 프로그램에 포함된 최고급 호두나무 루세떼함이 곰식이를 전부 담기에 작았다. 평균적으로 고양이 유골을 통해 만들어지는 루쎄떼 개수보다 곰식이는 서른 개 정도 많았다. 루세떼함 사이즈도 결국 강아지용 함으로 바꿔야 했다. 담당 장례지도사님은 고양이 루쎄떼 함 사이즈가 작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 했다. 많이 당황하는 듯 보였다. 크고 듬직한 곰식이는 답답하게 있는 것을 싫어하니까, 이 역시 곰식이 답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부터 곰식이를 봐왔던 친구들은 나의 안부와 함께 곰식이의 안부도 항상 같이 묻곤 했다. 곰식이는 잘 지내? 곰식이가 이제 몇 살이나 됐지?라고 물을 때마다 답은 쉬웠다. 곰식이와는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해에 처음 만났기 때문에 내 연차인 14년과 곰식이의 나이는 같다. 바로 나올 수 있는 대답이지만, 곰식이가 신부전 진단을 받은 후부터는 질문에 답하기 전에 매번 곰식이의 나이를 손가락으로 세어보고 답하곤 했다. 진단을 처음 받았던 12살을 넘기고, 13살도 넘기고, 14살이구나. 손가락이 하나 더 접힐 때마다 안도하며 곰식이에게 고마워했다. 그렇게 의젓하게 투병의 시간을 힘들지 않게 보내준 곰식이었다. 곰식이를 퇴원시키고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한 순간, 아니 5일 전 중환자실에 곰식이를 입원시킨 때부터 아니 진짜 어쩌면, 3년 전 신부전 진단을 받은 그때부터 나는 언젠가는 다가올 이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12살이니까 17살까지는 함께 하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앞으로 5년. 17살이 되면 곰식이는 나의 20대, 30대, 40대를 함께 해준 게 되기 때문에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3년이 부족하게 됐지만 괜찮다. 함께 하는 하루와 그 순간의 시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곰식이를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다가올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우리의 마지막 순간은 곰식이와 나 답게 의젓하고 우아했다. 괜찮았다. 

이제 곰식이를 아끼고 사랑해줬던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일이 남았다. 곰식이를 가장 오랜 시간 봐주신 합정동 병원 선생님과 분당으로 이사 온 후 곰식이를 봐주신 정자동 병원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감사했다고 말씀 드리려고 한다. 3년간 아는 거라곤 전화번호 하나뿐이지만, 매번 구하기 힘든 보조제와 사료를 구매할 수 있게 해 주신 이름 모를 그분께도 감사했다고 문자를 드리려고 한다. 긴 시간 동안 곰식이를 멋있어해 주고, 예뻐해 주던 그리고 곰식이가 좋아했던 나의 친구들, 지인분들께도 곰식이 소식을 전해야겠다. 

 

2006년 3월 울산에서 아빠 믹키와 엄마 보리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난 곰식이는 그 해 5월 10일에 제주도에서 나와 처음 만났다. 태어난지 2개월밖에 안된 고양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젓하게 첫 비행을 잘 해냈다. 제주도 집에 도착해서도 숨거나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1, 2층을 한 바퀴 쭉 돌아보더니 미리 준비해놓은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러고서는 내 품에 올라오더니 가르릉 소리를 냈다. 천성이 의젓한 곰식이었다. 제주도에서 2년, 서울 합정동에서 10년, 분당 정자동에서 2년이 안 되는 시간을 나와 쭉 함께 해왔다. 곰식이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있다. 무던한 성격의 곰식이라서 곰동이, 곰탕이 동생들과도 처음부터 잘 지냈다. 다묘 집사님들이 겪는다는 냥이들 간 신경전은 정말이지 남의 이야기였다. 무던한 곰식이를 곰동이와 곰탕이도 참 좋아하고 잘 따랐다. 먹성 좋은 곰식이지만 동생들이 밥을 먹고 있으면 양보하고 뒤에서 기다릴 줄 알았다. 그 순간 찍은 사진을 보고 동생 친구의 외국인 남편은 "젠틀 곰식"이라고 했다. 곰식이는 젠틀한 고양이었다. 곰식이는 먹는 것을 참 좋아했다. 몸무게가 6.8kg를 찍었을 때는 합정동 병원 선생님과 논의 후에, 체중 관리를 집중적으로 하기로 했다. 관리라고 해봤자 다이어트 사료로 식이 조절을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맛없다는 다이어트 사료를 많이 먹는 바람에 오히려 살이 쪘다. 300그램까지 무게를 내린 적도 잠깐 있었지만 요요가 왔다. 몸무게 그까짓 게 뭔 대수냐 싶어서 다이어트는 그만뒀다. 신부전 진단을 받은 대부분의 고양이들이 살이 빠지지만, 곰식이는 오히려 살이 쪘다. 처방식도 참 잘 먹어줬다. 그래서 고마웠다. 입원 전 곰식이의 마지막 몸무게는 9.2kg였다. 입원 중에는 복수 때문에 10.3kg까지 오르기도 했다. 슬픈 일이었지만, 뚠냥뚠냥 소리 듣다가 결국 마지막에 10킬로 찍어보고 가는구나 싶어, 이 또한 곰식이 답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뚠냥이로 행복하면 그만이니까, 곰식이가 싫어하는 것은 안 했다. 곰식이는 건강한 뚠냥이가 맞았다. 비록 뚠뚠하지만 신부전 진단 전까지 받은 모든 건강검진 결과는 항상 깨끗하고 좋았다. 병원에서 9살인가 10살 건강검진 때 찍은 엑스레이 사진은 수의학 교과서에 실려도 될 만큼 모범적이라고도 했다. 골격 엑스레이만 보면 마포구 전체에서 공격력 1위 고양이일 것이라고 합정동 병원 선생님이 말했다. 웃겼고 사랑스러웠다. 곰식이는 사랑받은 만큼 사랑을 주는 법을 아는 고양이었다. 14살이나 되었지만 아기 고양이처럼 꾹꾹이를 하고 내 턱을 깨물었다. 가르릉 소리는 아주 크고 길게 냈다. 내가 침대에 누우면 곰식이는 내 베개 절반을 차지하고 누워 자리를 잡고, 자기의 얼굴로 내 얼굴 반을 덮은 채로 나에게 기댔다. 그 상태로 가르릉 소리를 냈다. 생각해보면 이 자세를 곰식이는 가장 좋아한 것 같다. 나를 많이 좋아해 준 것도 같다. 집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곰식이는 친절하고 사랑스러웠다. 시도 때도 없이 궁디팡팡 해달라고 엉덩이를 들어서 민망할 정도였다. 그렇게 곰식이는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꾹꾹이와 가르릉, 궁디팡팡을 시전 하면서 사랑을 받는 고양이었다. 

 

듬직하고 의젓했던 사랑둥이 내 고양이

최고의 파트너, 최고의 친구였던 나의 곰식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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